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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렴청정으로 사실상 왕이 된 정순왕후는 국정을 주도하는 동시에 주요 신하들로부터 충성서약을 받았다. 그리고 정조의 거의 대부분 정책들을 중단시켰다. 순조의 왕비로는 김조순의 딸 순원왕후가 올랐다. 순원왕후는 정조가 살아있을 때 직접 간택한 왕비였다. 이런 일이 있었다. 어느날 순조는 아버지 정조와 함께 김조순의 집을 방문했는데 거기서 순원왕후를 보았다. 그런데 무지하게 예뻤다. 순조는 첫눈에 반해버렸다. 그날 이후 순조는 김조순의 딸이 아니면 장가들지 않겠다고 생떼를 부렸다고 한다.(야사) 하지만 정조가 승하하는 바람에 정식 혼례를 치르지 못했다. 벽파세력은 순원왕후를 반대하고 왕비를 새로 뽑을 것을 건의하였다. 이에 김조순은 정순왕후에게 SOS를 쳤고 정순왕후는 선왕의 선택이었다는 명분으로 대혼을 밀어붙였다. 이 일로 많은 벽파세력이 물러나고 노론의 온건 시파 김조순을 중심으로 한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시작되었다. 1801년에는 가톨릭교 박해 사건 신유박해가 있었다. 이 일로 남인이 몰락하였다. 3년간의 수렴청정 동안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정순왕후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국정을 돌보았다. 그리고 순조가 성년이 되자(15세) 깔끔하게 물러났다. 하지만 정치에서 손을 뗀 지 채 반년도 지나지 않아, 상황이 달라졌다. 순원왕후 간택을 반대했던 권유가 탄핵되면서, 그 사건을 계기로 시파가 벽파를 향해 전면전을 시작한 것이다. 당황한 정순왕후는 권력을 되찾기 위해 다시 수렴청정을 시도하며 정국에 개입하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