У нас вы можете посмотреть бесплатно 예레미야 말씀묵상_2026년 2월 12일(목)_예레미야 31장 23-30절 '나에게 아주 단잠이었다' или скачать в максимальном доступном качестве, видео которое было загружено на ютуб. Для загрузки выберите вариант из формы ниж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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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31:23-30절 ‘나에게 아주 단잠이었다’ 오늘 본문은 남유다의 회복에 관한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을 돌아오게 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이미 여러 번 약속하셨지만, 반복해서 약속하십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의 불안감 때문입니다. 처음 회복에 관한 예언을 들었을 때, 남유다 백성은 믿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예언이 반복되면서 조금씩 마음이 달라지는 이들이 생겼을 것입니다. 마음이 달라져도 불안함은 어쩔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제는 그 말씀이 믿어졌는데, 오늘은 그 말씀이 믿어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믿음의 뿌리가 약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라는 시냇가에 뿌리를 깊이 내릴 때까지 우리는 불안감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불안감을 아십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믿음의 뿌리가 튼튼해지고 깊어질 때까지 계속해서 말씀해주시고 약속해주시는 것입니다. 같은 말씀을 반복하시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날마다 마음에 기록하면서 조금씩 하나님께 뿌리를 내리면 됩니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 여름휴가로 제주도 여행을 계획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처음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가족여행이라는 말에 매우 좋아했습니다. 제주도에 가기 한 달 전부터 매일 노래를 불렀습니다. ‘떠나요 넷이서 모든 걸 훌훌 버리고 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 하루에 10번 이상은 불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저를 볼 때마다 물었습니다. ‘아빠 우리 제주도 가는 거 맞죠?’ 저는 그때마다 제주도 푸른 밤 노래를 부르며 아이들과 춤을 추며 놀았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안심하고 제주도 여행을 기대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물어보는 아이들의 질문이 저에게는 행복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마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며 아이들과 여행의 기대감을 즐겼습니다. 남유다 백성에게 회복의 약속을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도 이러지 않으셨을까? 싶습니다. 그들의 불안감을 아시기에 반복되는 질문이 지겹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그날을 기다리며 기뻐하자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약속이 성취되는 날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백성들의 반응은 이것입니다. ‘잠에서 깨어나 눈을 떠 보니, 나에게 아주 단잠이었다.’ 본문에서 ‘단잠’이라고 번역한 히브리어 ‘아레브’는 ‘마음에 들다. 달콤하다’라는 의미입니다. 바빌로니아 포로기가 그들에게 달콤한 기억처럼 느껴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솔직히 이 부분에서 묵상이 멈추었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회복의 기쁨이 크고, 포로기의 삶이 안정적이었다고 해도 어떻게 포로의 기억이 달콤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곱씹어 묵상하면서 이 말씀에 조건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 조건은 이것입니다. ‘그 때가 오면 사람들이 더 이상 아버지가 신포도를 먹었기 때문에 자식들의 이가 시게 되었다는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오직 각자가 자기의 죄악 때문에 죽을 것이다. 신포도를 먹는 그 사람의 이만 실 것이다.’ 포로기를 겪으면서 조상들의 죄로 인해서 자신들이 이러한 고통을 당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틀린 생각이었습니다. 물론 조상들의 죄가 쌓인 것은 맞지만,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죄로 인해서 고통을 당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고 조상들에게 책임을 전가했습니다. 하지만 포로기를 마치고 고국에 돌아와서는 더는 이러한 책임 전가를 할 수 없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대속, 70년의 포로생활로 그동안의 죄를 탕감했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자신들의 행위에 따라서 보응을 받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여전히 죄를 반복할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바빌로니아 포로기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곳에서 지내는 것이 더 나을 뻔 했습니다. 반면에 어떤 이는 포로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더욱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는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포로기가 달콤한 기억, 자신들에게 필요했던 기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물론 달콤한 기억이라고 해서 다시 포로기로 돌아갈 필요는 없습니다. 아니 돌아갈 수 없습니다. 이미 자유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회복된 백성으로서 새로운 삶을 살면 되는 것입니다. 즉, 포로기의 기억에 대한 평가는 포로생활의 수준이나 회복의 수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저는 군대에서 참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중에 가장 귀한 것이 컴퓨터입니다. 그전에는 딱, 전원만 켤 줄 아는 컴맹이었습니다. 그런데 군 생활을 통해서 보통 사람 정도의 능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교회 사역을 하면서 이 능력은 정말 귀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군생활은 저에게 달콤한 기억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겠습니까? 아닙니다. 분명 달콤한 기억이지만, 이 정도 달콤함이면 충분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이 말합니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여전히 죄 가운데 머물러 있어야 하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죄에는 죽은 사람입니다. 죄 가운데 그대로 살 수 없습니다.’ 포로기를 통해 죄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새로운 인생을 사는 사람에게 바빌로니아 포로기는 ‘단잠’이었을 것입니다. 포로기 덕에 하나님을 제대로 알았고, 계속해서 하나님과 깊은 사랑을 나눌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다시 돌아가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그 기억을 양분 삼아서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것뿐입니다. 살면서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습니다. 수치와 부끄러움의 기억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기억이 저를 성장시켰습니다. 지금도 유혹의 순간마다 그때의 기억, 그 수치와 부끄러움의 감각이 저를 깨웁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억을 사용하셔서 저를 감시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과거의 기억이 우리를 붙잡고 괴롭게 합니까? 그 기억을 단잠으로 바꾸는 것은 오늘의 거룩함이고 내일의 정결함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수치를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새 생명,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새로운 존재로 살기를 바랍니다. 그때 슬픔이 기쁨으로, 재를 뒤집어쓴 기억이 화관을 쓴 기억으로, 근심이 찬송으로 바뀌는 은혜를 경험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