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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영의 한국어 공부방 생각하기 이해하기 실천하기 사상과 철학 248 652. 물질의 세계는 행위의 세계고 정신의 세계는 해프닝의 세계이다. 하느님은 결코 노력에 의해서는 도달할 수가 없다. 하느님은 하나의 해프닝이다. 하느님을 강제할 수도 폭력적으로 될 수도 없다. 그냥 일어나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활동이라는 것은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 수동적이되면 내면의 중심을 깨닫게 될 것이다. 당신은 그것을 계속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항상 거기에 있었다. 당신은 그것을 알지 못했을 뿐이다. 그것을 알게 되면 세속에 머물러도 그 너머에 있을 수가 있다. 그러면 지진 속에 있더라도 낭패해 하지 않는다. 그리고 중심은 불가침, 순수, 무구, 순결한 채로 있다. 동물들이 되돌아 가듯이, 나무들이 쓰러져 가듯이, 강물이 흘러가듯이 인간도 역시 그렇다. 근원으로 되돌아가는 것이야말로 안식이다. 그의 얼굴에는 그의 일생이 새겨져 있다. 죽을 때는 속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살아 있을 때에는 속일 수가 있다. 죽음은 진실을 폭로한다. 그러므로 죽을 때 당신의 죽음은 어떻게 살아왔는지, 진정한 삶이었는지, 추하고 부정적인 삶이었는지 틀림없이 나타내 준다. 당신이 당신의 지옥이며 또한 당신의 천국인 것이다. 경계선과 한계가 있는 것은 지식뿐이다. 그것은 닫혀 있고 시끄럽고 장식되고 연마되는 것이고 매음같은 것이다. 그러나 무지는 누가 팔고 사겠는가? 아무도 그런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무지는 밤과 같은 것이다. 어둡고 조용하고 무한이다. 말은 무지와 함께는 존재하지 못한다. 질문이라는 것은 무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지식에서 나오는 것이다. 지식이야말로 장벽인 것이다. 육체라는 것은 하나의 사원과 같다. 그것은 존재 속에 있는 최대의 기적 중 하나이다. 그것을 즐겨라. 축하하라. 그것이 없다면 기계속에 감금된 유령이 되어 버릴 것이다. 시간은 상대적인 것이다. 인간의 삶과 죽음 사이에서 시계상의 시간은 1초인지도 모른다. 1분의 꿈 속에서, 하루살이의 삶은 그대의 일생에 버금가는 것과 똑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시간이라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시간에는 많은 층이 있기 때문이다. 국가라는 것은 소극적인 현상이어야 한다. 당신은 다른 사람의 삶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국가가 본래 달성해야 할 모든 것이다. 그것은 질서를 만들어 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무질서를 막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내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누구나 어떠한 형태이든간에 다른 사람의 인생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누구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인생을 침해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인간의 있어야 할 모습이다. 타인을 노예로 만들려고 하지 말고 누군가가 자기를 노예로 만드는 것도 허용하지 말라. 사람은 자유로운 인생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자유롭게 사는 것도 허용해야 한다. 무엇이든 당신이 사랑하는 것은 좋은 것이다. 만일 그것이 타인을 침해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도덕적인 것이다. 육체는 가득 차 있다. 영혼은 텅 비어 있다. 육체가 형태를 갖고 있고, 영혼은 무형인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런데 無라는 바로 그 말 때문에 당신은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영혼이 아무것도 아니라면 자아는 발붙일 곳이 없다. 실제로 발붙일 곳 같은 것은 없다. 아무런 실체도 없다. 자아라는 것은 신기루와 같은 존재인 것이다. 그것은 꿈이 존재하는 것처럼 존재하는데 불과하다. 만일 내면에 들어가 보면 거기에 ‘무’, 광대한 공간밖에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아무와도 만나지도, 발견하지도 못할 것이다. 아트만 즉 ‘자기’라고 불리는 것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것은 자아의 별칭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내면에 들어가는 것의 공포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당신이 밖으로밖으로 나가는 것은 그 때문이다. 당신은 이 세상 끝까지 여행을 계속한다. 그러나 결코 가장 가까운 여행(내면)에는 떠나려고 하지 않는다. 그 내면이야말로 가장 가까운 해안이고, 산이며, 메카이고, 사원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당신은 결코 가려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거기에 가면 두려워 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죽음인 것이다. 당신은 거기에서 죽는다. 그 속에 들어가 보라. 당신은 자기 자신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당신은 사라져 버린다. 증발해 버린다. 그 부재 속에 일체가 존재하고 있다. 그 무 속에 전체가 있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이 순간 나하고 여기에 있다면 영원히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 이 순간은 영원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제외하고 다른 순간 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현재’ 외에 다른 시간이 있을 수가 없다. 태양에게 어둠을 몰아줘서 고맙다고 하면 태양은 의아해 할 것이다. 태양은 어둠을 몰아낸 적도 없고 어둠을 만난 적도 없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어둠이 뭔지도 모른다고 할 것이다. 역설(패러독스)을 이해할 수 있다면 마음은 사라져 버린다. 마음은 그것에 대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피살이다. 논리라는 것은 마음에 호소한다. 역설은 논리로서 설명할 수 없다. 존재 전체가 어떤 논리도 없이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그것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다. 삶이란 역설적인 것이다. 반대끼리의 것이 아무런 고통도 없이 만나고 있다. 삶에 있어서 그것들은 두 개가 아니라 하나인 것이다. 그것들은 두 개로 보이는 것처럼 만들어 버린 것이 논리이다. 논리가 무의미한 것은 마음이라는 것은 어떠한 의미도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고작 마음은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 독창적이거나 창조적이지 못하다. 논리라는 것은 존재 중에서 가장 헛된 것이다. 강하게 버티고 있는 나무는 태풍에 쓰러지지만 고개를 숙이는 풀잎은 오히려 태풍에 먼지를 털어주며 지나간다.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을 어떻게 죽일 수 있는가. 그것은 무의미하다. 오직 싸우는 인간이라야 죽일 수 있다. 당신을 노예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당신의 공포이다. 공포가 없다면 노예가 아니다. 다른 사람을 노예로 만들려고 기를 쓰는 것은 당신의 공포이다. 삶에는 아무런 투쟁도 없다. 투쟁이라는 바로 그 관념 자체가 덧 없는, 인간적인 것이다. 삶 속에 투쟁이나 폭력이 있다고 보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다. 그것은 하나의 오해에 지나지 않는다. 어느것이나 모두 하나의 연쇄 속에 들어 있다. 자연계에서는 뭔가 다른 것의 음식물이 아닌 것을 찾아볼 수 없다. 어느 누구나 자기 차례가 되면 먹고 자기 차례가 되면 먹이가 된다. 이 끝없는 동그라미의 고리 때문에 인간도 뭔가의 먹이임에 틀림없다. 그 수레바퀴는 계속 돌아가고 거기에는 아무런 폭력도 없다. 여우가 사자에게 잡아 먹히면 여우는 사자의 일부가 되어 보다 높은 단계에 도달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문제는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 하나의 변신이다. 그것은 아름답다. 거기에는 아무런 잘못도 없다. 사물의 근본은 모든 것이 그 반대의 것으로 움직이고 있다. 강은 그것이 사라지는 장소인 바다로 흘러간다. 그 죽음으로 향한다. 그러나 그것은 죽음이 아니다. 그 강은 바다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관점은 두 가지가 있다. 그 강은 죽어 버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강은 바다로 떨어져, 흡수되고 바다한테 먹혀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관점은 강은 다시 바다가 되었다고 하는 보다 깊은 관점이다. 그것은 처음에 바다였다. 그리고 몇 번이고 강은 순환해서 다시 바다가 된다. 그것은 하나의 동그라미 고리이다. 삶은 하나의 순환이다. 무한한 순환이다. 그러면 당신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당신은 또 돌아오기 때문이다. 당신은 다시 찾아올 것이다. 그러면 삶도 두려워 하지 않게 된다. 그러면 논리에 대해서도 신경쓰지 않는다. 싸움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전체는 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당신의 어머니이다. 그것은 거기로부터 당신이 나온 바로 그 근원이다. 싸움꾼이 되지 말라. 곧게 있으려고 힘쓰지 말라. 항상 휘는 능력을 명심해 두는 것이 좋다. 그렇게하면 삶이 당신을 파괴하는 일이 없으며 아무도 당신을 패배하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텅 비어 있는 것이 가득 차게 되는 길이다. 텅 비우면 이 존재가 줄 수 있는 일체가 당신의 텅 빔 속으로 내려올 것임에 틀림없다. 당신은 자신이 버린 것만을 소유한다. 당신이 매달리는 사물은 당신의 소유가 되지 않는다. 만일 당신이 정말로 소유하고 있다면 왜 매달리겠는가? 구두쇠는 소유할 수가 없다. 그것은 그가 매달리기 때문이다. 그의 재산 쪽이 그 자신보다 크다. 그는 그것을 버릴 정도라면 차라리 죽음을 선택할 것이다. 재산 쪽이 그를 소유한다. 그는 자신의 소유물에 의해서 소유당하고 있는 것이다. 소유하고 있지 못하면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 소유성을 드러낸다. 그러나 소유하고 있을 때에는 소유같은 것은 잊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두려워지게 되면 소유성을 드러낸다. 궁핍한 것이 풍요로워지는 길이다. 많은 것을 갖는 것은 혼란스러워지는 길이다. 필요로하는 것은 단순하고 몇 가지 되지 않는다. 그래서 간단히 중독될 수 있다. 그러나 욕망은 무한하다. 그것들은 만족될 수 없다. 권력이나 부가 인간을 타락시키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이미 타락해 있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타락해 있는 사람만이 권력에 대한 야심을 불태우기 때문이다. 만족하고, 충족되어 있는 사람은 정치와 같은 일체의 난센스에 관여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충족된 삶을 산다. 그리고 그의 필요라는 것은 단순한 것이다. 논리라는 것은 하나의 선택이다. 성자는 선택하지 않는다. 전체를 부둥켜 안는다. 사람들한테 자기를 인정받으려고 하면 할수록 당신의 빛은 바래져 간다.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 사람, 타인의 잣대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그 때문에 빛나고 있다. .... 나머지 교재와 풍경 사진은 티스토리를 확인하세요~! 티스토리 주소 : https://paradigm21.tistory.com/3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