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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매체가 심어준 고정관념을 바꾸는 법

대중매체가 인류에게 가져온 핵심적인 변화에는 허구(드라마)와 사실(뉴스) 간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었다는 것도 있습니다. 같은 매체와 비슷한 프레임을 통해 전달되는 기호물 중 어떤 것이 픽션이고 아닌지를 구분해내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따라서 배우와 정치인을 구분해내기도 어렵습니다. 배우나 정치인, 드라마나 저널리즘, 허구와 사실 등은 모두 다 대중매체에 의해서 생산되어진 기호물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그런 것들을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환상입니다. 이번 강의에서는 대중매체가 인류 역사를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가 하는 거시적인 문제를 살펴보면서 또 동시에 우리는 대중매체 속에서 어떻게 자기성찰을 하고 알아차림을 할 수 있겠는가를 고민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울러 인쇄매체의 등장이 어떻게 근대적인 과학을 탄생시키게 되었는지도 살펴보겠습니다. --- (출처: "기호로 이루어진 세상" - 출간 예정) 20세기에 등장한 라디오와 텔레비전 등의 매스 미디어는 인류사회를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맥루한 역시 하벨로크와 마찬가지로 글말이 인간의 이성적 사고를 발달시켰으며, 씌어진 텍스트가 인간을 탈부족적인 개인으로 발전시켰다고 본다(McLuhan, 1964). 맥루한은 영상과 소리를 동시에 제시해 주는 영상 전자 매체, 특히 텔레비전은 이성적인 개인을 다시 비이성적 부족적 인간들로 퇴화시켰다고 주장한다. 시각 기관을 통해 좌에서 우로 순서대로 받아들여지는 텍스트와는 달리, 텔레비전의 시청각 정보는 눈과 귀를 동시에 사용하여 한꺼번에 받아들여지며, 이는 원시 부족사회를 결합시켰던 힘인 “터치(touch)”의 감각을 되살려, 지구 전체를 하나의 부족 사회인 지구촌(global village)으로 되돌려 놓는다는 것이다. 옹 역시 영상 전자 매체가 제2의 입말 문화 (the secondary oral culture)를 가져왔다고 본다 (Ong, 1995, p. 136). 전자 매체는 또한 인류로 하여금 새로운 역사의 기록을 남기게 하였다. 문자 이외의 소리와 영상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기록은 인류의 집단 기억에 새로운 양식을 부여하였다. 임진왜란에 대해 우리는 읽을 수밖에 없지만, 한국전쟁에 대해서는 보고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영상 전자 매체는 생중계 방송이라는 형태를 통해서 "하나의 사건을 즉각적인 역사 (instant history)"로 만들어버리는 위력까지 발휘하고 있다. 인간의 달 착륙 장면이라든지, 텔레비전의 전쟁 중계 방송 등이 이러한 예에 해당하는데, 커뮤니케이션 학자 엘리후 캣츠와 다니엘 다이안을 이러한 현상을 "미디어 이벤트media events"라 부르고 있다(Dayan & Katz, 1992). 하나의 중요 이벤트에 사회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는 일은 원시 부족사회에서나 가능했던 일인데, 이것이 영상 전자 매체를 통해 전지구적인 규모로 다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근대과학 종교, 정치, 경제 분야의 근대화뿐만 아니라 근대 과학의 성립에도 인쇄매체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우리가 요즈음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과학주의의 세계관이나 객관적 진리에 대한 보편적인 확신 등 근대적 세계관은 모두 인쇄매체 이후에 등장했다. 중세 이후 근대로 넘어 오면서 이성과 진리가 강조되며 과학이 발달하였고 근대 국가가 성립된 것도, 아이젠쉬타인의 역사적 고찰을 따르자면, 모두 인쇄 매체의 발달에 기인한 것이다. 누구나 똑같은 텍스트를 가질 수 있게 하는 인쇄 매체는 과학적 담론의 기반이 되었으며, 지식의 객관성과 절대 진리에 대한 무한한 확신을 심어 주었던 것이다. 인쇄 매체의 하나인 학술지(scholarly journals)의 등장은 과학적 방법론과 과학적 담론 형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이는 정보 양식과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의 변화가 한 공동체의 담론의 틀을 바꾸어 놓을 뿐만 아니라, 그 구성원들의 사회적 상호작용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중요한 증거가 되므로, 이에 대해 좀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오늘날 대부분의 과학에서 상식처럼 받아들여지는 실험에 바탕을 둔 실증주의적 방법론과, 자연과학은 물론 인문 사회과학에서까지 폭 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논문"이라는 형식의 글쓰기는 "학술지"라는 형식의 인쇄 매체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과학적 실험의 결과 학술지 논문이 나왔던 것이라기 보다는,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하기 위해 “과학적”인, 즉 실증적인 실험을 하게 되었던 것임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과학적 논문의 전형적인 형식은 다음과 같다. 문제 제기.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객관적인 이론 제시. 개관적인 실험과 관찰과 그로부터 객관적으로 도출되는 자료. 그 자료에 대한 객관적 서술. 적절한 인용과 참고문헌. 이러한 논문 형식을 통해 과학자는 과학의 이론과 방법론 뒤로 숨어버린다. 물론 어느 학술 논문이든지 그것을 작성한 사람의 이름은 있지만, 그는 다만 '작성한' 사람에 불과할 뿐 본래적 의미에 있어서의 저자(author)가 아니다. 과학적 논문의 기본적 전제는 어느 누가 쓰던 간에 방법과 이론이 같다면 똑같은 것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만약 놀부와 흥부가 같은 연구 문제와 같은 이론, 같은 방법론, 그리고 같은 자료에 입각해서 논문을 썼는데 같은 것이 되지 못한다면 누군가 혹은 뭔가 잘못된 것이다. 둘 중의 하나는 오류이거나 비과학이다. 둘 다 맞을 수는 없다. 이러한 과학적 담론 형식에서는 너도 옳고 나도 옳은 수가 없다. 내가 옳기 위해서 너는 틀려야만 한다. 내가 말하기 위해서 너는 침묵해야만 한다. 이것이 과학의 독단론(monologic)이다. 과학적 논문에서 글쓴이는 방법론과 이론이라는 과학적 신화의 이야기 틀 뒤로 숨어 버린다. 애거 (Agger, 1989)는 과학자는 스스로를 담론으로부터 주변화marginalize시킴으로써 자신의 권위authority를 확보한다고 한다. 말하자면 과학자는 저자이기(author/ship)를 포기하는 대가로 권위(author/ity)를 얻는다. 과학이라는 "신화"를 이야기하는 과학자는 진리를 탐구하는 이성적이고도 개별적인 인간으로 상정되어 있다. 그러나 과학자의 활동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험도 연구도 아니며 바로 글쓰기다. 작가가 "쓰기 위해" 경험(experi-ence)을 필요로 하듯이, 과학자도 쓰기 위해 실험(experi-ment)을 필요로 한다. 1665년에 발간되기 시작한 최초의 과학 학술지인 런던 왕립 학회의 철학 논문집 (The Philosophical Transactions of the Royal Society of London)을 연구한 찰스 바저만(Bazerman, 1988)에 따르면, 이 학술지의 편집자였던 올덴버그(Henry Oldenburg)는 출판에 적절한 논문 몇 편만을 골라내고 나머지 원고는 되돌려 보내야만 하는 "어려운 일"을 떠맡게 되었다. 전문 과학자도 아니었던 올덴버그는 편집자로서의 자신의 판단이 올바르고 정당하다는 것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충분히 권위 있는 기준"을 필요로 했다. 말하자면 과학자 사회에서 "공정한 규범"이라고 인정될 만한 판단 규범이 필요했던 것이다. 과학자들 역시 자신들의 글쓰기를 위해서는 일정한 "합의된 게임의 규칙"이 필요하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편집자를 설득해야만 했는데, 자신의 논문의 가치를 설득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직접 해보니 그렇더라"고 주장하는 것임을 곧 깨닫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과학자들은 비판적인 독자나 다른 과학자들의 비판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단행본으로 책을 출판할 때에는 전혀 우려할 필요가 없었던 여러 가지 상황, 즉 한 권의 학술지 속에서 다른 비슷한 논문들과 한 눈에 비교된다는 우려와 격렬한 비판의 가능성들이 생겨난 것이다. 이러한 격렬한 비판을 몸소 체험했던 사람이 바로 그 유명한 아이작 뉴튼 경이다. 그는 이 최초의 학술지에 창간후 7년 뒤인 1672년 “빛과 색에 관한 새로운 이론 (A New Theory of Light and Colours)”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때 많은 독자들과 다른 과학자들은 이 뉴튼의 논문의 문제점과 논리적 헛점에 대해 격렬한 비판을 제기하였다. 단행본인 책을 출판했을 때에는 일찍이 경험할 수 없었던 심한 비판에 직면했던 뉴튼은 그 후 다시는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하지 않았다. 그는 그 후 오직 단행본인 저서만을 발표했다. 뉴튼이 만약 요즈음 대학의 교수였다면 그는 재임용에 탈락 위기에 직면했을 것이다. 뉴튼은 많은 비판을 받았던 자신의 논문 내용을 보완해서 30여년 뒤에 단행본으로 발표하였는데, 그것이 유명한 "광학"(Optics, 1704)이다. 이러한 격려한 비판과 비교의 와중에서 편집자와 논문 기고자(과학자)들은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게임의 규칙을 "실증주의적 실험"에서 찾게 되었다(Bazerman, 1988, p. 140). 학술지가 여럿 생겨나기 시작하고,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하는 것이 점차 보편화되면서 경험적 방법론도 보편화되어 갔다. 1800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출판된 과학 논문 중에서 실험에 바탕을 둔 논문은 5%에서 20%에 불과했지만, 그 비율은 학술지 논문의 증가와 더불어 급격히 늘어갔으며, 19세기 이후에는 마치 실험적 방법만이 유일한 과학적 방법론인 양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바저만의 주장의 핵심은, 실험적 방법이 진리 추구를 위해 어떤 우월적인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고, 과학자들에게 주어진 것도 아니며, 단지 설득력 있는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특정한 목적을 위해 과학 공동체에 의해 선택된 역사적 산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실험적 방법에 기반을 둔 논문 형식의 글쓰기는 과학을 위한 유일무이한 글쓰기 방식일 수는 없다. 그는 “실험적 방법은 과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전달될 수 있는 여러 형태의 정보 중의 하나일 뿐” (Bazerman, 1988, p. 65)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 #디지털미디어의이해 #내면소통 #기호로이루어진세상 #매체발전의역사 #대중매체 #맥루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