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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과 좋아요, 알림설정 부탁드립니다. #메타인지학습법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먹는 자는 더 이상 주리지 않는 만족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요 6:35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안녕하세요. 카리스메타교육원 원장 송인설 목사입니다. 전도서 1:2절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하였습니다. 헛되다는 것은 채워도 만족이 없다는 뜻도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만족하게 살 수 있을까요? [1] 모든 인간은 삶의 만족을 찾습니다. 2014년 오마이 뉴스, 오연호 대표가 책을 썼습니다.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책 제목이 충격적이었습니다. 행복이 무엇일까요? 행복은 ‘만족감’ 같습니다. 바라는 욕구가 충족되거나 바라던 희망이 이루어질 때 ‘만족감’을 느끼지요.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합니다. 전도서 기자도 자기 마음을 기쁘게 하고 만족스럽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전도서 2:24절입니다.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만족하게] 하는 것은 없나니”(전 2:24) [2] 그런데 삶에서 만족하기란 힘듭니다. 그런데 전도서 기자는 아무리 성공해도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전도서 2:17절입니다. “이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미워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에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기 때문이로다”(전 2:17) “바람”을 잡는 것 같다는 말이 가슴에 사무칩니다. 다 얻은 것 같은데 갑자기 손에 쥔 바람처럼 빠져나가더라는 것이지요. 한번쯤은 경험해 본 현실입니다. 아니 여러 번 경험하지요. 우리는 그렇게 속고 또 속으며 삽니다. 왜 인생은 인생에서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만족하지 못할까요? 동양에서 노자 같은 중국 현인과 석가모니 같은 인도의 부처, 서양의 그리스 스토아 철학자들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성공해도 불행한 이유는 성공에서 행복을 구하기 때문이다. 부와 권력과 성취와 가정과 물질적 안정과 안락 등 세상의 외적 조건은 일시적 만족밖에 주지 못한다. 결국 다 사라지고 더 공허해진다. 어거스틴은 좀 다르게 설명했습니다. 삶에서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더 중요한 것을 사랑하지 못해서다. 덜 중요한 것을 더 사랑한다. 더 중요한 것을 덜 사랑한다. 사랑에 질서가 없는 게 불만족의 원인이다. 놀라운 통찰이지요. 일을 사랑하는 건 잘못이 아니지만, 가정보다 일을 더 사랑한다면 가정에 문제가 일어나지요. 사업가가 법과 정의보다 돈벌이를 더 사랑하다 여차하면 감옥에 갑니다. 세속 사회 현대인도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똑같습니다. 물질적으로 더 풍요로워졌는데 만족이 없습니다. 성공한 연예계 스타들의 행적은 충격적이다 못해 무섭지요. 인간은 어째서 행복한 삶에서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했을까요? [3]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먹는 자는 주리지 않는 만족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성경은 다른 얘기를 합니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먹는 자는 주리지 않는 만족을 누릴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 먹고 12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를 임금 삼으려 했습니다. 예수는 산으로 피신하셨습니다(요 6:15). 기적의 떡을 다시 먹고 싶은 무리가 다시 예수를 찾아 왔습니다. 예수는 이해하기 힘든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35절입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요 6:35) 어제 먹은 떡이 진짜 떡이 아니라 내가 진짜 떡이다. 나는 더 이상 먹고 싶은 게 없을 만큼 만족스럽게 하는 살리는 떡이다. 그러셨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궁극적 만족이 없는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라’ 경고하기도 하셨습니다(요 6:27). 썩지 않을 양식과 썩을 양식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생명의 떡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를 살리시는 예수의 사랑을 생각나게 합니다. 떡을 먹어야 삽니다. 떡을 먹지 않으면 우리는 죽습니다. 먼저 곡식이 죽습니다. 떡도 조각조각으로 찢깁니다. 이빨로 씹히고 위장으로 들어가 녹습니다. 영양분이 분자 단위로 작아집니다. 장이 흡수합니다. 몸에 에너지가 공급되고 살아납니다. 떡이 성하게 남아 있으면 우리가 죽습니다. 떡이 찢기면 우리가 삽니다. 나는 하나님이지만 찢겨서 죽임을 당한다. 너희를 살리려고 내가 죽는다. 너희를 성하게 하려고 내가 찢긴다. 내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입는다. 예수는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레스토랑에서 먹는 밥은 맛이 있습니다. 그러나 엄마가 해주는 ‘집밥’은 사랑까지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명의 떡, 십자가에서 찢기신 몸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아들을 버리면서까지 사랑하신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그 사랑을 먹고나면 더 이상 배가 고프지 않습니다. [4]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떡을 먹는 자는 이웃에게 생명의 떡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생명의 떡을 먹고 배가 부르면 우리도 이웃에게 생명의 떡이 될 수 있습니다. “광에서 인심 납니다.” 하나님 사랑으로 마음의 광이 가득 차 버리면, 남들에게 뭐든지 주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공짜로 받은 것이니 공짜로 줍니다. 시편 63편의 기자처럼 이런 노래가 나옵니다.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시 63:5)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나의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시 63:5).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생명의 떡 예수 그리스도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왕국을 섬길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세상 것은 적당히 누리고 하나님만을 절대 사랑하는 왕국의 충성스런 일꾼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피를 뿌리고 덮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