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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809 수낮 대담) 나의 존재감에 집중하시면, 거기는 신성의 영역이에요. 여러분 게 아니에요. 나의 존재를 여러분이 자꾸 여러분 꺼라고 생각하니까, 참나얘기만 나오면 경기를 일으키는 분들이 있어요. 참나도 난데. 참나 구경도 못한 분들은요 제발 말을 하지 마세요. 여러분들이 하는 말들이 다 구업이 되서, 자기도 망치고 남도 망칩니다. 참나라고 하는 것은 그런 내가 아니에요. 그 참나를 모른다는 것만 봐두요. 그 분이 얼마나 영성이 지금 낮은 단계인지 지금 다 보여주고 있는건데 참나 비방하는 분들 많습니다. 불교 좀 했다고 해서, 참나 비방하는 분들, 학자들 많아요. 제가 보면 기가 막히죠. 그럼 나는 미국갔다온 얘기를 하고 있는데, 나는 미국 안가봤다는 걸 딱 첫머리에 써놓은 격이에요. 참나를 비방한다? 이건 참나를 모른다는 얘기에요. 체험. 전혀 만나본 적이 없다는 얘기에요. 충격적입니다. 그럼 그 이후 글을 쓸 필요가 없는거죠. 참나라는 것은 에고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참나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냐면, 나라는 존재감에 계실때에는 에고성이 작동을 못해요. 함께 돌아갈 수는 있지만, 그 자리만 딱 가지고 얘기하면 거긴 에고성이 없습니다. 나라는 존재감이 에고같지요? 처음에는 에고가 뭍어있죠. 나라는 존재에 집중할려면. 나 하면, 벌써 여기 내 스펙이 다 묻어 있잖아요. 나라는 말에. 근데 내가 나만 진짜 딱 보고 있으면 내가 나한테 무슨 스펙을 얘기할 필요가 없어지죠. 다 사라지죠. 내가 존재한다는 것만 딱 들어옵니다. 그럼 그때. 내가 존재한다는 느낌에만 집중했을때, 그렇게 한번 해보세요. 몰라. 하시고 그냥 존재만 하시면 나라는 존재 밖에 안느껴집니다. 이게 참난지 아닌지 어떻게 아느냐? 이때는 내 개체성이 없어요. 그 자리에는 개체성이. 남과 구별되는 나라는 생각을 못 일으킵니다. 남이다 나다 하는 구별을 못 일으켜요. 그 자리에서는. 분명히 존재해요. 존재하는데 나 이외의 존재를 상정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내가 우주에요 그냥 그 자리에서. 내가 우주에요. 내가 우주의 중심이고. 그냥 우주. 말이 좀 이상하지만, 이렇게 느껴져요. 나 이외에 다른 존재를 설정할 수가 없다니까요. 그 나 는 뭐냐는 거죠. 그건 오온의 나가 아니에요. 오온 작용으로 인한 나가 아니에요. 그 나는 시공에 안잡혀요. 이원성에 안잡혀요. 그 세계가 있어요. 그 차원이 있는데, 이 차원을 모르는 사람들이, 이 차원을 얘기하면 나? 그럼 에고네. 왜 그렇게 에고에 집착하는거야? 참나 얘기하는 사람들. 아트만. 힌두교 구경도 못한 분들이 아트만을 자꾸 비방하는데. 아트만. 참나입니다. 똑같습니다. 그래서 선불교 분들이 선불교 조사님들이 아트만 사상을 다시 취한거에요. 그러면 초기불교는 아트만을 버렸느냐? 부처님은 그냥 그 자리를 열반 이라고 한거에요. 아트만이라고 안부르고. 니르바나라고 부른거에요. 거기는 모든 번뇌가 사라지는 자리야. 그 사라진 자리는 나 아닌가요? 나에요. 왜? 내가 체험할 수 있는 경계니까. 여러분이 체험하는 모든 것은 여러분이에요. 여러분 밖에 없어요. 여러분은 여러분 마음 밖에 체험 못해요. 그런데 오온이 아닌 청정한 열반을 체험한다. 그것도 나에요. 나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이에요. 나라고 부르지 않으신 거죠. 부처님이. 열반 이라고 불렀어요. 번뇌가 없는 자리. 그런데 보세요. 초기경 법구경 보면 부처님이, 나는 열반을 얻었다. 라고 얘기합니다. 여전히 나 가 나와요. 나는 열반을 얻었다. 열반에 든 나 라는게 있는거죠. 그때 그 나를, 사람들이 그러면 오온의 난가? 라고 보시면 안된다는 거에요. 그게 아니에요. 그니까 부처님이 또 다른 식으로 설명할 때, 나 라는 존재가, 내가, 짐을 많이 들고 있는데 짐이 오온이다. 짐을 내려놓고 나면, 나는 자유로워진다. 열반을 얻는다. 이런 설명도 하세요. 그럼 그 나는 누구죠? 짐을 들고 있다 벗어버린 나. 그게 열반이에요. 체험해 본 분들은 압니다. 그런데 체험 못해 본 분들은 이걸 못따라와요. 홍익학당 네이버 카페 (http://cafe.naver.com/bohd) 홍익학당 페이스북 ( / hongikhdpg ) 홍익학당 후원하기 국민은행 879601-01-245696 (흥여회) 문의전화 02-322-2537 본 동영상은 흥여회 후원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게 도와주신 '흥여회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