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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9일 주일예배 독일 Ramstein 한인교회 홍성일 목사 #요나 #분노 #은혜와분노 #요나의박넝쿨 #램스타인한인교회 #kaiserslautern #ramstein #홍성일목사 설교노트 - 요나의 박넝쿨, 그의 분노의 이유 (요나 4:1-11) 1. 요나는 사역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분노하며 죽기를 구합니다(욘 4:3). 이는 실패나 고난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그 절망의 이유는 원수의 도시 니느웨에 임한 ‘너무나 큰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요나는 멸망을 선포했으나, 니느웨는 왕부터 짐승까지 회개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회개를 보시고 뜻을 돌이키셨을 때, 요나는 자신의 기대와 다른 전개에 깊은 분노를 느꼈습니다. 4장 1절의 원문은 이 감정을 ‘그것이 요나에게 큰 악(‘라아’)이었다’라고 묘사할 만큼, 그는 하나님의 용서를 불의로 간주했습니다. 2. 요나는 하나님이 은혜롭고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분임을 명확히 알았습니다(욘 4:2). 그는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신앙 고백을 정확히 인용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위대한 자비가 원수 니느웨에 적용되는 것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요나가 가진 ‘정의’는 악인이 반드시 심판받는 것이었습니다. 니느웨가 용서를 받는다면, 그들에게 고통받은 이스라엘의 눈물은 누가 닦아준다는 말입니까? 자신의 정의관에 따라 분노하는 요나에게, 하나님은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라고 물으십니다(욘 4:4). 3. 요나는 하나님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 대신 행동으로 반응합니다. 그는 성읍에서 나와 동쪽 언덕에 초막을 짓고 앉았습니다(욘 4:5). 그는 니느웨를 떠나지 못하고, 성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머물렀습니다. 이는 혹시라도 하나님이 마음을 바꾸어 저 성을 멸망시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버리지 못한 모습입니다. 요나는 물리적으로 초막에 앉아 있지만, 영적으로는 ‘자기 연민과 분노의 감옥’에 갇여있습니다. 내게 상처 준 이가 실패하기를 바라며 그 주위를 서성이는 우리와 같이 말입니다. 4. 하나님은 요나를 위한 시청각 교육을 시작하십니다.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의 머리에 그늘을 만드셨고, 요나는 “크게 기뻐하였습니다”(욘 4:6). 니느웨의 구원에 “매우 싫어했던”(욘 4:1) 그가, 자기 머리 위의 작은 식물 하나에는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이 기쁨은 하룻밤 만에 사라집니다. 하나님은 벌레와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셔서 박넝쿨을 시들게 하셨고, 요나는 다시 죽기를 구합니다(욘 4:7-8). 5. 하나님은 박넝쿨로 인해 성내는 요나에게 ‘그가 성내는 것이 옳은지’를 다시 묻고(욘 4:9). 요나는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다”고 항변합니다. 요나는 박넝쿨을 위해 씨를 뿌리거나 가꾸지 않았습니다. 그 그늘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은혜를 단 하루 만에 ‘당연한 자신의 권리’로 여겼습니다. 우리가 분노하는 지점은 대부분 은혜로 주어진 것을 나의 소유나 권리라고 주장할 때입니다. 요나는 자격 없는 자신에게 주어진 박넝쿨의 은혜는 당연시하면서, 자격 없는 니느웨에게 주어진 용서의 은혜는 불의하다고 분노하는 모순을 보입니다. 6. 하나님은 요나의 ‘아낌’과 하나님의 ‘아낌’을 대조하십니다(욘 4:10-11). 요나는 자기에게 잠시 유익을 준 것을 아꼈고, 하나님은 무지한 영혼들을 아끼셨습니다. 요나가 본 것은 죄의 무게였지만, 하나님이 보신 것은 영혼의 비참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나의 긍휼에 동의할 수 있겠느냐?” 신앙의 성숙은 ‘나의 옳음’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긍휼’을 배우는 것입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사라지는 나의 박넝쿨에서 눈을 들어, 하나님이 아끼시는 사람들, 곧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 우리의 부르심의 이유입니다.